Metaphor

박연준, 안녕?

2017. 9. 20. 22:10

안녕?

나는 잘 있어요.

잘 웃고, 잘 먹고, 잘 죽어요.

어제는 왜 나를 빚었나요? 내가 두 개나 필요했나요?

그러나 안녕? 나는 웃어요.

접시가 깨져도, 발톱이 자라나도, 오줌을 싸면서도.

아아, 나는 하품을 하면서도 눈을 동그랗게 뜨죠.


발에 차이는 많고 많은 나를 하나만 집어 삼켜 주세요.

그리고 인사해요, 안녕?

내 꼬리를 떼어 목에 걸어주세요.

리본으로 묶어주세요.

꽁지가 빠진 나 같은 건 쓰레기통 속에 넣어 주세요.

그러나 살며시 넣으며서 인사해 주세요, 안녕?

웃고 있니, 안녕?


부다페스트에선 내가 한 명이래요.

그곳에선 절대로 웃을 수 없다고 해요.

밤이 되면 사타구니 사이에서 혹처럼, 버섯처럼 슬픔이 돋아나고,

난 곧 남자가 될지도 모른대요.

부다페스트에선 안녕? 하고 인사하는 건 반칙이래요.


무너지는 겨울 숲에서, 머리가 홀랑 벗겨진 늙은 나무들만

안녕? 말하고 죽는대요.

바람이 불고, 낡은 아버지 같은 건 흔적도 없이 진대요.


아아, 안녕.

'Metaphor'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은강, 일백 년 동안의 오늘  (0) 2017.09.20
박연준, 붉은 체념  (0) 2017.09.20
기형도, 오래된 서적  (0) 2017.09.20
최현수, 릴리트  (0) 2017.09.20
이현호, 령  (0) 2017.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