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우리, 사랑할래요?


딱딱한 도시의 등딱지를 열고 

게장 속을 비비듯 

부패와 발효가 이곳에선 구분되지 않아요 

그러니 잘 발효했다고 믿는 몸속에서 비벼진 밥알을 

서로의 입에 떠 넣어주듯 

그대를 밥 먹이는 게 내 피의 이야기인 듯


보도블록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꽃잎을 놓은 댓잎 자리 위에 누워 

우리 사랑할래요

지나 온 가로수의 허방으로 미끄러져간 계곡과 별빛 

기어코 가시에 찔리죠 가시에 찔리고 싶어 걷는 봄날엔 

그러니 총 대신! 빌딩 대신! 군함 대신! 지폐 대신! 

건널목을 둥글게 휘어놓고 

꽃잎 물고기와 사슴을 불러 해금을 켤까요 

그대와 그대가 사랑을 나눌 때 

그대와 그대 곁에서 

그대들 위해 군함을 쪼개 모닥불을 지필까요 

무릎뼈 위에 먹을 갈아 

은행잎 댓잎 위에 번갈아 편지를 쓸까요 오세요 그대,


피 흘리는 벽들이 서로의 가슴을 칠 때 

진동으로 생겨난 샛강 같은 골목들 

그대와 나의 혈관을 이어 across the universe!

무수한 밤이 있었지만 

밤의 등골 속으로 흰 새가 내려앉는 건 드문 일이죠 

오세요, 그대가 천 번을 죽어나간다 해도

난 아무 데도 안 갈 거예요 

뼈마디마다 댓잎 이불 펼치고 그대 입술에 진홍꽃잎 수놓으며 

여기서 사랑노랠 부를 거예요 오래전 피 속의 벌 나비 같은 

그대와 나의 해골을 안고 뒹굴 거예요


포성 분분한 차디찬 

여기는 망가진 빗장뼈 위 백척간두의 칼 끝 

이것은 피의 이야기, 

사랑을 구하는 피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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