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을 펼칩니다 장미가 담장 밑에서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눈으로 삼키고 입으로 내어 놓습니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 귀로 받아먹고 머릿속에 장미를 키웁니다 담장의 가슴을 딛고 오른 장미가 넝쿨을 펼쳐놓습니다 두 손으로 장미를 받쳐 들다 가시에 찔린 담장이 철조망으로 장미를 쿡쿡 찌르며 색안경을 낍니다 장미는 가시를 무릅쓰고 자꾸 넘어가는데 아이는 잠속으로 빠져듭니다
주변이 색안경을 끼고 의심을 싹틔운 뒤 무성한 소문이 온 마을을 뒤덮었습니다 가시 섞인 말이 꽃을 따고 잎을 따더니 병든 장미라고 놀렸습니다
그 뒤 나를 흔들고 간 슬픔은 거름이 되어 더 멀리 손을 뻗어 세상을 만지게 합니다 낡은 담장도 붉은 장미향기로 채워지고 펼쳐든 동화는 장미넝쿨처럼 더 힘차게 아이의 꿈속으로 뻗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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