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phor

이현호, 묵음(黙吟)

2017. 9. 20. 21:30

어떤 말은 울음의 성시(成市)이다. 죽은 첫사랑의 이름 소현이라든가


백일(百日) [명사] 아이가 태어난 날로부터 백 번째 되는 날

백일(百日) [명사] 아이를 가진 여자 사형수가 아이를 낳은 뒤에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기간


이 말의 지은이는, 사는 일과 사(死)는 일을 한번에 발음한 사람은, 그만

세계의 모든 시를 다 썼을 것만 같은데


백일을 산 아이가 울고 있다; 그 동안의 인생만으로도 충분히 아프다는 듯이

백일을 산 여인이 울고 있다; 생이라는 소중한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세상에 홀로 우는 것은 없다

혼자 우는 눈동자가 없도록

우리는 두 개의 눈으로 빚어졌다


그 말을 상상하면 두 끈을 묶은 매듭이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엉켜 있는 매듭은 왜 울음의 이미지로 오는 것일까


그 단단한 매듭의 힘으로 인간이 구전되어 왔다면

우리의 어머니는 울음, 당신입니까


네가 혼자 울면 아무도 네 울음을 듣지 않지만 네가 신(神)들을 향해 울부짖으면 그들은 네 울음에 귀 기울인다 한 마을의 개들이 그렇듯이 그들은 너를 따라 울어대기 시작한다


고백하지 않았다면 영원했을지 모를 짝사랑처럼, 어떤 말은 세계의 모든 시를 다 읽은 듯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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