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뜯어낸 창살사이로

반 년치 달빛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당신이 만지작거리던 모자끝에

깃털하나를 꽂기 위해 죽었던 새는

목통을 펄떡이며 바다를 건너왔다

타로점을 보던 인도여자가

친친 독사를 감고 손을 뻗는 이곳은

교교한 달빛이 점거한 차가운 밀실

떠나면 다신 못 돌아올 것 같은

안개 속 기억은 꿈의 예감과 일치해서이다

여명까지 불과 얼마를 남겨두고

창백해지는 당신의 이마에

성호를 긋는다

이지러졌다 피어나고

불같이 타다 사그라드는

달의 칼날에 베인 수많은 팔목에서

붉은 장미꽃잎이 떨어진다

탄탄한 밤을 건너오며 수없이 죽고

수없이 되살아날

피보다 진한 바람의 체액

아무도 거두어 갈 수 없는 여기,

지상에 존재하고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그대와 내가 미궁에 빠질 수 있는

영원한 은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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