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phor

김안, 미제레레

2017. 9. 19. 21:18

내 모든 삶이 만약이라면,

이 세계가,

매일 내가 먹어야 하는 알약의 개수를 헤아리는 이 저녁의 세계가

집 앞 놀이터 시소가 밤마다 저 혼자 움직이는 것처럼

반디불이인양 외진 골목마다 피어나는 담뱃불,

한껏 나빠지고 싶던 시절 담뱃불을 손목 위에 지지면 다짐하던 헛된 약속들처럼

만약이라면

어떤 혐의들로부터도 패악들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허물어진 얼굴을 양손에 받쳐 들고 서서

오, 아무 인생이 없는 기쁨이여

세상의 모든 중심을 향해 흩어졌던 나의 신들이 결국 길을 잃었구나

애도할 수 있을까

오늘밤은 머리 위로 펼쳐진 속죄의 목록들이 무척이나 아름답구나

존재하지 않는 짐승과

사라져버린 사물과

죽은 영웅의 세계가 창백하게 얼어붙어 있구나

똑, 똑,

손가락을 분질러 밤의 입술을 칠해주면

옛날의 전쟁들이 다시 시작될까

옛날의 죄가 다시 반복될까

밤에 휘파람을 불면 머리맡에 뱀이 똬리를 틀다 나를 물어가고

밤에 손톱을 깎아 창밖으로 내던지면 나를 닮은 짐승이 내 대신 눕고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저 눈을 가리고서 밤을 헤매는

선량하고 헛된 낮의 내면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누구의 내면이 나의 입으로 당신에게 고백할까

여보, 고백하는 입마다 빛나는 알약이 쏟아져요

이 알약을 당신의 입술로 받아 주세요

빛나는 어둠이 몰려와 이 작은 창을 가리는구나

그런데 밤새도록 내 고백의 시체를 뜯어먹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오늘밤엔 속죄의 시간이 부족하구나

창밖에

저렇게 빛나는 약들을 헤치며

피로와 계절과 어제 죽인 벌레와 화초들이 떠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