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창에 비친 너를 지우고
넘실대는 거대한 배후가
문턱을 넘는 밤,
각자의 이불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적막한 육체들의 도시, 그들은 정말이지
구들의 무게로 잠들고, 여기는
저지대의 상습 침수 지역
악몽은 빗물을 깊게 끌어당기지
썩은 이빨과 괴사된 잇몸
악어가 입을 벌린다
컴컴한 악어의 입속에서
유령에게 책을 읽어 주는 일이란
정말이지 외롭고도 오싹한 일
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해요
왜 아무도 오지 않는 거죠
무서워하는 나를 두고
인류는 무얼 하고 있는 거죠
우린 서로가 두렵고, 강해도 두렵고 두려워하고
약해도 두렵고 두려워하고
그러나 우린 늘상 두렵고
몸의 굴곡을 이불만은 기억하지
낯선 다리 밑에서 잠드는 기분으로
상악과 하악이 깨어질 듯 부딪히고
바닥이 비에 잠긴다
앉아 있는 이불의 무게중심이 발밑으로 가라앉는다
언젠가 솜이나 오리털, 가벼운 거위털이 날아오르겠지
침묵의 이불이 폭발하는 날이 오겠지
비에 젖어 아무것도 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널 위해 침묵하마
사는 한 취소되지 않을 지독한 육체를 위해
이불의 세계만이 침묵한다는 걸
아는 자, 나무의 영들이 광란하는 밤
이 투명한 빨강, 투명한 투명한 잠
비를 머금은 이불이 피를 흘린다
세상에게 주문을
뱀처럼 엉킨 전선줄에
줄 끝의 스파크에
질주하는 차들에
우연한 날들의 번개에
네 피는 비처럼 차고 잔인할 것이다
이불의 세계를 아는 자는 위험하지
이불과 함께 실려 가는 날들
우리는 모두 그러므로 위험한 자들
곁쇠로 자물쇠를 교묘히 여는 일이란
이불을 아는 자, 이불을 아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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