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에 젖은 바람의 결을 만지고 있으면

시간의 발자국소리 쪽으로 동그랗게 귀 모으는

나의 옛집이 문을 여는 것만 같다.

담장이 붉은 그 집 정원에 앉아 있으면

낡은 기억을 벗어던지는

문패의 거칠고 주름진 손이 어둠 속에서도 읽히고

제상문(蹄狀紋)의 촉각 끝에서 피어나는

맨드라미 채송화 분꽃들

한창 역사중이다.

가끔은 해독되지 않는 기억들 저편에서

저 사춘기 적 보리밭과

첫사랑 데리고 떠나간 간이역이 궁륭(穹窿)처럼 일어나

나를 출발점으로 데려가려한다.

그럴 때 나는 원고지를 꺼내어

그대에게 길고 긴 안부를 물으리라.

밀려오는 이 거대한 적막과

그 적막 사이를 노 저어 다니는 시간의 사자(使者)와

채울수록 더 비어만 가는 텅 빔과

풀수록 더 꼬여만 가는 생의 어지럼증과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먹구름의 너머에 대해서.

이슬의 지문을 조회하면 누군가가

내 기억의 언저리에서 동그랗게 손 모으고 있다.

순장한 나의 아틀란티스 엿보려

저 투명하고 둥근 신의 렌즈로 날 길어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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